그럼에도 불구하고
그럼에도 불구하고, 글로 내뱉을 수 없는 소재가 있다. ‘섹스’ 에 관한 소재다. 물론 말하고자 하는 섹스는 사람 간의 섹스, 타인 간의 섹스가 아닌 나의 섹스 이야기. 섹스를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거나 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절대 아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, 내가 나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꺼려하는 것은 섹스란 단어에 내포된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. 내 성욕이든지 수음 따위는 이야기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. 이런 것은 나 혼자만의 일로 한정되기에, 내가 만든 가식을 서슴없이 찢어버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. 하지만 섹스는 1+1,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.
황홀했던 섹스의 기억은 함께 나누는 상대가 지금 옆에 있든지 없든지 간에, 엄연히 상대방과 함께 나눈 시간 속에 있다. 혹여 이미 헤어져서 ‘님’ 이 아닌 ‘남’ 이 되었다 하더라도 내게 있어 ‘남’ 이면서도 ‘남’ 이 아니다. 비록 서로 좋지 않은 일로써 더 이상 교차되지 않는 선을 따라 제 갈 길 걷는 사이가 되었다 하더라도, 함께 디뎠던 흥겨운 발걸음을 떠올려보면 차마 섹스에 관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. 나 혼자만의 만족을 위하여 상대방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자잘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섹스 기억을 꺼내 드는 것은, 내게 주었던 작고 예쁜 마음 한 송이를 무참히 짓이겨 밟아버리는 잔혹하며 고약한 일이기 때문이다.
좋고, 즐겁고, 황홀하고,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눈 이가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뜻 깊은 자기만의 삶을 보내고 있을 터인데, 그를 모독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?
10/20, 2007 | 숨쉬기
comment l Trackback l comment RSS
댓글을 남겨 주세요